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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토리에서 한 달 살아보기로 했다[여행기] 돗토리에서 한 달 살기 <1>

 여행을 떠나되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한 곳에 머무르면서 느긋하게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하릴없이 빈둥거리고 싶었다. 그런 거,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대답하리라.

집에 있으면 느긋해지고 편안해지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집은 할 일이 잔뜩 쌓인 공간이기도 하다. 청소며, 빨래며, 음식 만들기며... 이런 일상을 외면하면서 자주 빈둥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할 일이 발목을 잡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것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려면,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리라.

7월 한 달 동안 돗토리현에서 머물기로 한 것은 일상에서 훌쩍 벗어나 머릿속을 하얗게 비우면서 나무늘보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위가 지독하게 무르익을 무렵이지 않나, 7월은. 더위를 핑계삼아 게으름을 마음껏 부릴 수 있으므로.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10월, 제주에서 한 달 동안 머문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참으로 좋아서 다시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는 내면의 유혹이 끈질겼다는 고백을 한다.

그 때, 10월의 제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대로 만끽했다.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뿐더러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정글게스트하우스’를 한 달 동안 예약한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게스트하우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겨워지면? 제주로 떠나기 전에 숙박비를 전부 송금하면서 이런저런 문제를 떠올렸지만, 걱정하는 일의 90% 이상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커다란 트렁크 하나를 들고 정글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나중에 정글게스트하우스 쥔장에게 들은 얘기지만, 그쪽에서도 장기투숙자가 썩 반갑지 않았다나. 이런저런 불만을 제기하거나 말썽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했다나.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내 입장만 있는 게 아니라 쥔장의 입장도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새로운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제주에서 보낸 한 달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낯선 공간에서 홀로 지내기를 기대했는데, 홀로 지내지 못했다. 밤마다 ‘심야식당’이 열려 그날의 일품안주와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으며, 낮에는 지금은 행원리에서 어떤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기정씨와 함께 오름에 오르거나, 김영갑 갤러리에 가거나 하면서 보냈다.

2011년의 정글게스트하우스는 시설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편안하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 딱 좋은 곳이었다. 지금은 도미토리를 운영하지 않지만, 그 때는 8인실의 도미토리만 있었다. 여행을 좋아해서 세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제주에 정착,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던 쥔장은 장기숙박자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좋은 여행의 기억은 여운을 길게 늘이며 오래 간다. 가끔 그 때의 나날을 기록한 블로그를 들여다보면서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 여행을 다시 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여행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제주로 다시 가서 한 달을 머무른다고 해도 같은 기억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시간대가 다르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제주에서의 기억은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르는 여행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했다. 다시 그런 여행을 해보자.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실천을 하자. 그래서 올해 7월, 그런 여행을 하게 됐다.

이번에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돗토리현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마츠자키(松崎). 왜 그곳이냐고? 2015년과 2016년 가을에 연속해서 돗토리현에 갈 일이 있었다. 그 때 낯을 익혔고, 2016년에는 마츠자키의 타미 게스트하우스에 잠깐 들렀다. 게스트하우스 내부는 보지 못했지만, 카페는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곳이라면 한 달쯤 한껏 게으름을 피우기에 적당하겠다는 생각을 그 때 했다.

그래서 그곳으로 정했다.

타미 게스트하우스는 홈페이지에 내부 사진을 올리지 않을뿐더러 사진을 찍는 것조차 금지한다. 그래서 그곳에서 장기 투숙하는 것 역시 일종의 모험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는 동생이 동행했다. 이번 여행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가는 여행이 아니었다는 게 제주여행과 다른 점이었다.

일본에 한 번도 가지 않은 동생은 타미 게스트하우스가 궁금해 했다. 게스트하우스라면 내부 사진을 제공하면서 사전 정보를 알려주는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타미 게스트하우스를 인터넷으로 검색한 동생은 우리나라와 영어권 사이트에서는 타미의 내부 사진을 찾아내지 못했다.

동생은 중국인들이라면 타미의 내부 사진을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 중국어 사이트를 뒤져 결국은 타미 사진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대단한 중국인들. 찍지 말라고 했는데 사진을 찍었고, 숙소 예약사이트에 타미의 내부 사진을 올렸던 것이다. 타미 카페 사진과 함께.

나중에 타미의 쥔장과 스태프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한참동안 같이 웃었다. 그들 또한 엄청나게 놀라면서 재미있어 했다.

7월의 일본은 엄청나게 더웠다. 더울 것으로 예상했고, 우리나라의 여름 또한 그에 못지않게 더우므로 일본의 더위가 특별할 것은 없지만, 더운 여름에는 가급적이면 여행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태양이 미치도록 열기를 뿜어내는 계절에는 집안에 콕 박혀 에어컨 바람을 맞고 있는 게 가장 좋은 피서가 아닐까.

타미 게스트하우스는 2016년에 톳토리현에 갔을 때 통역을 해준 강미선씨가 대신 해줬다. 타미 게스트하우스는 28일 이상 묵으면 숙박비의 30%를 할인해준다. 하루 숙박비는 2800엔인데 30%를 할인하니 숙박비가 쑥 내려갔다. 덕분에 숙박비가 많이 들지 않았다.

한데 한 가지가 싸면 다른 한 가지는 비싸기 마련이지. 싼 숙박비 대신 교통비가 어찌나 비싸던지 이동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싼 교통비 생각이 저절로 났다. 교통비가 비싸다고 여행자가 숙소에만 처박혀 있을 수 없으니, 거참. 일본여행을 할 때면 사는 여러 가지 카드가 있지만 대부분 3일권, 4일권, 5일권 등이었으며 그것도 한국에서 사는 게 싼 카드였다. 한 달 이상 묵는 장기투숙자겸 여행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카드라고나 할까. 그래도 미리 준비한다면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을 가능성은 높다.

돗토리현은 일본 주고쿠 지방에 속한다. 주고쿠 지방은 주고쿠산지가 동서로 길게 늘어져 있어, 지역을 산요지방과 산인지방으로 나눈다. 동해 쪽으로 면한 지역이 산인지방인데, 돗토리는 산인지방이다. 산인지방은 철도나 고속도로 등이 발달하지 않아 이동이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교통이 불편한 것은 마츠자키에 머물면서 아주 제대로 실감했다.

교통이 불편하다는 것은 산인지방이 일본에서 오지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특히 돗토리현이 그런 것 같다. 현청 소재지인 돗토리 시는 현란하거나 번잡한 분위기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도시였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돗토리현의 다른 도시인 구라요시 시나 요나고 시도 마찬가지였다. 

기차를 타면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농촌 풍경이 길게 이어지곤 했다. 우리나라는 기차를 타면 지방으로 내려가도 빽빽한 아파트단지를 많이 볼 수 있는데, 돗토리현에서는 그런 풍경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이 달랐지만.

돗토리현의 인구는 60만 명 정도라고 한다. 노인인구 비율은 거의 3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안다. 초고령사회 일본은 이미 노인인구가 30%에 가까워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60년에는 39%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예상보다 더 많아질 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긴 이런 일이 남의 나라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노인인구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니까.

그뿐이 아니다. 일본 인구는 이미 정점을 찍고 앞으로 줄어들 일만 남았다고 한다. 1억2천만 명에 가까웠던 인구가 2060년에는 8600만 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럼, 우리나라는?’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데, 일본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면 우리도 비슷한 형태가 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유혜준  olives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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