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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와 분권으로 지역이 살기 좋은 나라 만들자[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특별기고]

생각의 표현으로서 언어는 개인의 내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원래 의미 외에도, 그 사람의 심리상태, 사고방식, 지적 수준 등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언어는 개인의 내면 외에도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고정관념이나 집단적 사고방식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와 같은 전래 속담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 대화와 소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왔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낡은 언어를 폐기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언어도 계속 만들어낸다. 지금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영화, 전화, 전기, 자동차 등의 단어도 100년 전에는 매우 생소한 새로운 용어였다.

한편 휴대전화가 일상화된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새로운 언어들이 크게 늘어났다. 인터넷, 이메일, 포탈, 카톡, 내비 등의 외래어 단어들은 이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휘가 되었다. 휴대폰, 단톡방과 같이 외래어와 우리말이 뒤섞인 기이한 신조어들도 많다.

일상 언어 중에는 부정확하지만 무심코 반복 사용하는 단어도 많다. 감자탕에 감자가 없고, 벼룩시장에 벼룩이 없다. 그러나 크게 문제삼는 사람들은 없다. 정확한 언어가 아님에도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된다면, 그 사안이나 사물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거나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다르면 안된다는 강박적 고정관념에서 한국인들이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언어를 대통령을 비롯해 전문가, 언론인, 사실상 전 국민이 잘못 사용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방'이라는 언어가 바로 그것이다. 지방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어느 방면의 땅', '서울 이외의 지역', '중앙의 지도를 받는 아래 단위의 기구나 조직을 중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등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기틀인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등으로 표기하고 있고, 1948년에 제정된 제헌헌법에도 동일한 단어들이 사용되었다. 해방 후 입헌 민주주의가 도입되었지만, 한양과 지방을 구별하던 조선왕조의 봉건적 의식관념과, 경성의 총독부가 지방을 감시하고 관리하던 일제식민지의 압제통치 사고방식이 청산되지 못한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지방'의 의미는 서울이나 중앙이 아닌 변방지역을 의미한다. 정부 조직 중에 '서울지방법원', '서울지방경찰청'과 같이 서울도 지방의 일부로 간주하는 명칭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방대학이나 지방발령과 같이, 지방은 서울을 배제한 기타 지역의 의미로 사용한다.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과정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적 격차가 심화되면서, 한국사회에서 지방은 여전히 기피하고 배제해야 하는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21세기 첨단 디지털 사회에 살고 있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가면 성공이고,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면 실패라는 봉건적 고정관념이 불식되지 않고 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가야한다”는 전래속담이 아직도 통용되는 사회이다. 지방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입시에 실패한 것이고, 지방발령은 좌천이나 퇴직압력을 의미한다.

지방에 대한 기피와 혐오는 최근 국민적 관심을 끌어낸 교대생들의 교원임용 축소 항의시위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동정여론을 구하려던 학생들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비난여론이 비등했다. 시위 교대생으로 짐작되는 한 학생의 페이스북 게시글 때문이었다.

“서울이 적게 뽑으면 지방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는 글이 많은데 죽어도 시골은 싫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에서 초등교사 수급실태를 지역별로 확인하기 시작했고, 수도권과 지방의 교원임용 현실이 상당히 다른 걸로 나타났다.

강원, 충청, 호남 등 지방에 가면 교대생들은 비교적 쉽게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교사 일자리가 부족한 곳은 교대생들에게 인기 높은 수도권과 광역시권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였다. 전국적인 교원임용 통계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인터넷 댓글은 시위 교대생들을 '배부른 철부지'로 비난하는 글로 가득했다. 교육자가 될 자격이 없는 이기적인 학생들이라는 글도 많았다.

교대생들의 시위는 초등교사와 같이 평생고용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라 하더라도, 청년들이 선호하는 지역, 즉 수도권에 그 일자리가 있지 않다면 무용지물임을 보여주었다. 지방에 위치한 공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아무리 좋은 대우를 해주어도 우수한 청년인재들을 고용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등 전래 속담이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디지털 사회로 변모한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현실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정 살기 좋은 나라가 되려면 지방이 서울만큼 좋은, 아니면 서울보다 나은 지방이 늘어나야 한다. 그 수단이 바로 자치와 분권이다. 자치와 분권을 통해 어느 지역에 살건 모든 국민들이 평등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은퇴세대 만이 아니라 청년들에게도 서울을 떠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지방의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수도권 청년들이 지방으로 이주하게 만들어야 한다. “서울에 올라간다,” “지방방송은 꺼라”와 같은 지역차별 언어표현이 사라진, 그래서 모든 지역이 고르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장호순  hosoon41@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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