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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와 분권의 관계[특별 기고] 김찬동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

1.

자치는 자기입법과 자기통제를 핵심개념으로 한다. 즉 자치를 위해서는 공간과 시민과 자치권이 있어서 자기입법을 위한 의회(혹은 총회)를 구성하고 그 법에 따라서 집행조직을 설치하여 법의 집행을 책임지울 수 있다. 자치권은 고유권설이 있고, 전래설이 있으며, 보장설이 있다. 전래설은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고, 보장설은 헌법으로 보장된 것이기에 입법으로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분권은 국가가 가진 권한을 지방으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분권이 가능하려면 국가의 의지가 명확히 권한을 나누겠다는 것이 있어야하고, 얼마만큼의 권한을 나누고, 또 그 권한은 어떤 역할을 국가와 분담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국가의 분권의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형식적으로 지방에 일부의 권한을 이양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관위임사무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하여 얼마든지 지방의 권한을 통제하고 규제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이 점에서 자치와 분권은 명확히 물과 기름같이 전혀 이질적인 개념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치는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공유자원을 스스로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이고, 분권은 국가가 가진 권한을 지방정부나 지방자치단체와 나누는 것인데, 이것은 국가와 지방의 역할분담과 관계에 대한 속성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그 분권의 정도가 달라진다.

즉 국가와 지방의 관계가 수직적 통제관계인가 국가와 지방이 수평적 협력관계인가에 따라서 분권의 양과 질은 현격히 달라질 것이다. 분권은 국가영역의 역할분담에 대한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요컨대, 자치는 시민사회의 영역이고 분권은 국가영역에 속하는 개념으로서 전혀 이질적인 영역의 개념이다.

 

2.

그런데, 자치를 이야기 할 때, 주민자치와 단체자치의 구분을 하기도 한다. 주민자치는 주민들이 자치체를 구성하여 자치를 하는 것이고, 단체자치는 국가로부터 하위조직에 자치권을 부여하여 하위조직을 국가로부터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단체자치는 국가로부터의 ‘분권’의 정도에 따라서 ‘자치’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 만일 분권의 정도가 20%밖에 되지 않는다면, 국가 혹은 중앙정부의 몫이 80%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자치는 형식적이고 제한적인 정도로만 운영되게 된다.

한국에 도입된 1991년의 지방의회를 선거로 구성하는 것은 국가로부터 하위행정기관에 불과하였던 국가-지방행정의 관계에 ‘지방자치’를 하기 위하여 주민들의 대표조직을 선거로 ‘구성한 지방의회’를 덧붙여준 것이다.

그러면서 지방행정의 단체장이 ‘집권’하고 있었던 조례제정권, 예산심의의결권, 사무감사권을 분리하여 둔 것이 지방의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지방의회는 단체장의 일부 권한을 분리(separation)한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자치권을 가지고 자치의 중심기관으로서의 ‘의회’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자치’가 제대로 도입되지 않은 것인가? 한국의 지방자치법의 구조와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방자치단체라는 개념은 들어와 있어서 지방자치법 1조에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인 관계를 정함으로써 지방자치행정을 민주적이고 능률적으로 수행하고, 지방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며, 대한민국을 민주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자치의 개념은 지방자치법의 어디에도 들어와 있지 않다. 특히 주민의 권리란 것을 보면, 지방의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거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13조)에 되어 있지, 지방정부의 주권자로서의 권리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즉 주민이 지방정부를 형성하고, 존재하게 하는 권리는 주민에게 있지 않고, 국가에 있고, 국민에게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도 1)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 도, 특별자치도 2)시군구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이러한 분류를 하였는가에 대해서 특별한 기준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다만 지방자치법 3조를 보면, 지방자치단체를 법인으로 한다고 하면서(정부가 아님에 주의),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 도, 특별자치도는 “정부의 직할(直轄)”로 두고 라고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직접 통제를 받는 하부 행정기관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어쩌면 1991년 지방자치제도를 재도입할 때, 과거의 법률을 그대로 승계하면서 “고치지 않은” 조항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지방자치” 란 개념에는 지방의회를 두고, 주민이 지방의원을 선거로 선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직할(直轄)을 받는 법인에 불과한 셈이다.

 

3.

현재의 법제도에서는 여전히 집권이 있지만, 분권은 제한적이고, 분권의 수권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정부는 여전히 정부로서의 입법권과 행정권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법령(法令)의 범위 안에서 이를 직할을 받는 법인에 불과하다는 셈이어서, 한국에서 실질적 자치, 본질적 자치의 개념은 법제도상에 제대로 도입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치분권을 국정의 중요한 어젠다(5대국정목표의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의 20대 국정전략의 하나로)로 하고 있고, 자치분권을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목표개념으로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서 ‘주민자치’를 확대하겠다고 하고, 지역 현장에서의 ‘풀뿌리민주주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고 하고 있다. 또 자치분권을 이루기 위해서 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고, 지방재정확충을 통해서 지방분권을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문재인정부가 새로운 시대로 규정하면서 제시한 ‘국민중심의 민주주의(국가중심의 민주주의와 구분)’의 시대적 인식을 가지고 ‘실질적 주권자로서의 국민’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흘러나온 개념이다.

그리고 대표되는 국민주권보다는 개개인의 국민주권을 강조하고, 제도화된 국민 참여보다는 일상적인 국민주권행사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시대적 인식 속에서 나온 개념이다. 그래서 아래로부터의 국민주권이 표출되어야 하고, 일상생활 속에서의 민주주의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도정치와 시민사회는 연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자치분권과 생활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년에 헌법 개정의 기회의 창이 열린 이 때에 30년 만에 찾아온 이 헌법구조의 개편의 이 시기에 국민중심의 민주주의라는 헌법제도 설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구현되는 헌법 개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헌법 구조가 얼마만큼 국가 중심적이고, 관치중심의 집권적 패러다임에서 설계된 것인가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분석위에서 ‘자치’가 실질적으로 재설계(redesign)되고, 분권이 입법차원(국회분권)과 행재정차원(중앙정부의 지방정부로의 분권)에서 ‘권한’차원(사무차원이 아닌)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일본이 도주제개편을 하면서 시도하였던 광역권역 중앙정부의 권역사무소를 도주차원으로 이관한다는 중앙정부 조직의 분리 및 이관을 염두에 둔 분권이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에 필요한 생활권, 지역권역 권한과 재원, 조직(인력포함)하여 일괄적으로 이관하는 ‘조직차원의 이관’이 분권의 방식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중앙정부의 슬림화와 글로벌 경쟁 속에서 국가의 중앙정부 역할의 특성화가 가능할 것이다. 국가가 먼저 특성화하여야 지방자치단체도 특성화하여 지방정부로 자치분권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국가가 중앙집권하면서 종합(수평분업의 종합이 아니라, 수직분업의 종합)하는 관치(官治)시스템을 여전히 고수하면서는 자치분권은 없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제대로 된 자치제도의 새로운 설계 없이는 분권은 요원하다고 할 것이다.

▲ 김찬동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

 

김찬동  cdkim15@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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