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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와인, 광명동굴이 구세주였다"[대한민국 와인기행] 두레양조 ②
권혁준 두레양조 대표

 우리나라 와인 가운데 '2004년 빈티지 와인'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과실을 원료로 특색 있는 한국 와인을 생산하는 200여 개가 넘는 소규모 와이너리들이 본격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 후반이기 때문이다. 그랑꼬또 와이너리에서 2008년 빈티지를 마셔본 적은 있지만, 그 이전에 생산된 한국와인 시음은 두레앙 거봉와인이 처음이다.

두레양조에서 생산하는 거봉와인과 증류주(브랜디 포함) 비율은 30% 대 70% 정도 된다. 권혁준 대표는 와인보다는 증류주 쪽에 무게중심을 두었다고 밝혔다. 증류주 쪽이 더 많은 거봉포도를 소비할 수 있다. 750ml 용량의 와인을 5병~7병 정도를 증류해야 750ml 증류주 1병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 대표는 고집스럽게 와인은 스위트와인 하나만 만들었다고 한다.

권 대표는 2004년 빈티지 거봉와인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두레양조 지하 저장고로 안내했다. 지하저장고에는 와인생산 설비 외에도 200여 개나 되는 오크통이 저장되어 있다. 이곳 오크통에서 60여 톤의 포도 브랜디가 숙성되고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이 7년이라고 한다. 이것을 전부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이상이나 된다고. 브랜디는 묵으면 묵을수록 값어치가 올라가는 장점(?)이 있다.

이 오크통 사이에 거봉와인 2004년 빈티지가 보물처럼 숨어 있었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와인은 보는 것만으로도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두레양조 지하저장고에서 숙성되고 있는 두레앙 브랜디

2004년 빈티지 거봉와인 맛은 어떨까? 입안에 침이 저절로 고였다. 권 대표는 거봉와인은 장기 보관 와인이 아니기 때문에 마실 수 없는 수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마셔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된다. 게다가 이런 아주 특별한 경험, 언제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마도 평생에 한두 번 정도?

와인을 소중하게 받쳐 들고 두레양조 와인카페로 돌아와 권 대표가 와인 코르크 마개를 땄다. 정적이 흘렀다. 최 소믈리에와 나는 와인 병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숨을 죽인 채 와인 병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보존상태가 기대 이상으로 좋습니다. 와인이 약간은 '무통 로칠드' 같은 분위기가 나는군요. 색은 괜찮군요. 산화가 많이 되었지만, 마시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원년 빈티지는 상당히 귀한 것이죠."

최정욱 소믈리에의 평가다. 첫 모금을 입안에 머금었을 때는 산도가 높아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으나, 이상하게 마시면 마실수록 입맛을 잡아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쉽게 맛볼 수 없는 귀한 와인이라는 생각 탓일까?

권혁준 대표는 고작 스무 병 남짓 남은 원년 빈티지는 한 병에 백만 원을 줘도 팔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소장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란다. 원년 빈티지를 마시고 있으니 이 와인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의 반응이 궁금하다. 맛은 합격점을 받았으니, 많이 팔리기만 하면 되는데 소비자 반응은 어땠을까?

"난리가 났어요, 아주 난리가."

최정욱 소믈리에가 두레앙 브랜디를 테이스팅하고 있다.

권 대표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첫해부터 대박이었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난리가 났다는 의미는 와인이 펑펑 터지는 '난리'였다나. 병에 주입한 와인이 후 발효를 일으키면서 터진 것이다.

스위트와인은 단맛이 남아 있어 계속 발효될 가능성이 높다. 발효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걸 몰랐다. 책을 통해 포도주 양조법을 익혔다고는 하나 실제 경험이 없는 상태였으니, 시행착오는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시청에서 공무원들이 사무실 캐비닛에 와인을 넣어두었는데 그게 실내 온도가 올라가면서 뻥뻥 터져서 서류가 다 젖고 난리가 났어요.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 그 당시에는 참담했죠."

이런 경험은 와이너리마다 한 번 이상 한다. 두레양조도 마찬가지였으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처음에야 어디 그런가.

2만 병을 생산했지만 팔린 것은 몇 천 병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도 아는 사람들에게 시음하라고 나눠줬으니, 팔린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권 대표는 몇 병을 팔았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남은 와인은 얼마 남기지 않고 죄다 뜯어서 증류를 했다.

증류주는 장기보관이 가능했고, 처음부터 증류주 생산에 비중을 많이 뒀기 때문이다. 지금 스무 병 남짓 남은 원년 빈티지는 그 때 살아남은 것이다. '희귀템'이 될 줄 알았다면 더 남겨둘 걸 그랬다면서 권 대표는 웃었다.

권혁준 두레양조 대표

매년 와인을 생산했지만, 잘 팔리지 않았다. 지역에서만 팔릴 뿐이었다. 한국와인을 파는 곳이 없었으니 판로가 형성될 수 없었다. 국내 와인시장은 매년 확대됐지만, 수입와인이 대세였고 한국와인은 존재조차 없었다. 두레양조에서 생산한 거봉와인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지하저장고에 증류주와 브랜디가 늘어났다. 술을 만들수록 돈이 쌓이는 게 아니라 술만 쌓였다.

이런 상황일 때, 광명와인동굴이 문을 열었다. 2015년 4월이었다. 최정욱 소믈리에는 와인동굴을 개장하기 전에 두레양조에 와인판매를 제안했고, 권 대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광명와인동굴은 예상하지 못한 '대박'을 터뜨렸다. 2015년에 거봉와인은 광명와인동굴 판매 2위를 기록했다. 권 대표는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다고 말한다.

"광명동굴은 예전에 금을 캐던 광산이잖아요. 이제는 와인이 금이 되는 거죠. 대한민국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을 지방정부가 한 겁니다. 처음 광명동굴 얘기를 들었을 때, 이건 무조건 된다고 생각했어요. 동굴과 와인은 아주 잘 어울리는 조합이잖아요. 무조건 납품한다고 결정했죠."

어느 와이너리는 와인을 일 년 동안 천 병도 팔지 못했는데, 광명동굴에서 하루 만에 천 병이 팔리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는 일화도 있다. 일부 와이너리는 광명동굴 덕분에 팔지 못하고 쌓아둔 재고를 완전히 소진했다고도 한다.

2015년 4월, 광명동굴에 와인을 납품하던 와이너리는 20여 개에 불과했으며, 와인 품목도 50여 개가 채 되지 않았다. 2017년 9월 현재, 59개 와이너리가 납품을 하거나 납품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와인 품목도 200여 가지가 넘었다는 게 최정욱 소믈리에의 설명이다.

권 대표는 "광명동굴이 구세주였다"고 말한다. 몇 천 병의 와인을 한꺼번에 팔 수 있었으니, 힘을 받았고 한국와인에 대한 희망도 갖게 되었단다. 광명동굴이 아주 짧은 기간에 대한민국 와인의 중심지이자 메카로 손꼽히게 된 배경이자 이유다.

광명와인동굴

하지만 지금도 그런 것은 아니다. 광명동굴에 와인을 납품하는 와이너리가 증가하면서 업체별로 와인 판매가 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명시 도시공사로 와인판매 업무가 넘어가면서 각 와이너리 별로 판매금액이 2천만 원을 넘을 수 없다는 규정을 적용, 판매제한을 하고 있다.

거봉와인처럼 잘 팔리는 와이너리는 불만이 있을 텐데, 권혁준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강한 어조로 잘라 말한다.

"우리 (와인)판매가 줄어든 만큼 다른 와이너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괜찮아요. 광명동굴이 나한테 희망을 줬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갈 수 있었어요. 그러니 이제는 다른 사람(와이너리)에게 희망을 줘서 그 사람이 새로운 희망을 찾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광명동굴로 촉발된 한국와인 시장의 변화는 앞으로 한국와인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광명와인동굴에서 숙성되고 있는 한국와인들

권 대표는 한국와인생산협회 2대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가 회장이었을 때만 해도 광명동굴 같은 한국와인 단독판매장이 전혀 없었다. 그는 와인생산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한국와인산업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고 한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고, 회원들에게 오해를 받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권 대표는 광명동굴이 더 반갑고 고맙다. 한국와인생산자들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광명동굴 덕분에 한국와인 판매가 활성화되고, 와인생산자가 희망을 가져 한국와인생산협회가 힘을 받아 발전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권 대표는 거봉포도의 대표적인 주산지인 천안을 한국의 와인 메카로 조성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는 말한다. 지속 가능한 농업은 '수지 맞는' 농업이라고. 농사를 지어서 수지를 맞출 수 없는 게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이다. 농촌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는 것은 농사를 짓는 젊은 세대가 없기 때문이고.

"수지맞는 농업은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야 지속농업이 가능하죠. 저는 농산물 가공산업 육성에 그 답이 있다고 보는 거죠. 특히 포도입니다. 포도는 10차 산업이잖아요. 천안에 포도지구지정을 받아 특색 있는 와이너리를 육성, 세계적인 와인을 만들겠다는 거죠. 세계적인 와인은 대한민국에서 나올 겁니다."

권 대표는 지난 15년 동안 와인보다는 증류주와 브랜디 생산에 무게 중심을 뒀다면 올해부터는 와인에 힘을 실을 계획이다. 우리나라 기후에 맞는 추위에 잘 견디는 양조용 포도나무를 재배, 세계 시장을 겨냥해 다양한 맛을 지닌 와인을 생산하고 싶기 때문이다.

유혜준  olives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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