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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리 와인, 이름이 특이하다고요?[대한민국 와인기행] 고도리 와인 ①
최봉학 고도리 와인 대표

영동이 ‘한국의 보르도’라면 영천은 ‘한국의 부르고뉴’라고 불린다. 영천 역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포도산지로, 영동 다음으로 와이너리가 많다. 현재 16개의 농가형 와이너리가 있다. 그래서 한국와인 이야기를 할 때면 영동과 함께 영천이 화제에 오를 때가 많다. 서로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영천의 와인생산자들은 영동과 비교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둘 다 포도산지이기는 하나, 주로 생산하는 포도 품종이 다르고, 와인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도를 생산지역에 따라 영동포도, 송산포도, 대부포도, 영천포도 등 산지별로 구분하는 것이다.

영동에서는 캠벨 얼리를 주로 재배하지만, 영천은 머루포도라고 불리는 MBA(머스캣 베일리 에이)가 주종을 이룬다. 포도 품종이 다르니 생산되는 와인 맛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앞서 설명한대로 같은 품종의 포도라 하더라도 생산지역에 따라 맛이 다른데 품종이 다르면 더더욱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포도 재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땅(떼루아), 기후 등과 같은 환경요인이다.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한 지역에 따라 포도 맛이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니 영동과 영천을 비교할 수 없으며, 비교할 이유도 없다. 두 지역의 개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면 된다.

이번에는 찾아간 곳은 영천의 고도리 와인. 영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의 와인으로 손꼽히기에 충분한 맛있는 와인을 생산하는 농가형 와이너리다. 와인메이커는 최봉학 대표. 그가 만든 화이트와인은 고도리 와인 대표 상품인데, 정말 맛있다. 한 번 마시면 그 맛에 푹 빠져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 와인이 올해 상복이 터졌다. ‘2017 아시아 와인트로피’에서 실버 상을 받았고, ‘2017년 우리 술 대축제 품평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대외적으로 맛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지난 12월 15일, 최정욱 광명동굴 소믈리에와 고도리 와인을 방문했다.

광명역에서 KTX 열차를 타니 영천역까지 2시간 반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영천역에는 KTX 열차가 서지 않아 동대구역에서 영천행 무궁화 열차로 환승했다. 영천역에서 고도리 와인까지 거리는 6km밖에 되지 않는다. 최봉학 고도리 와인 대표가 영천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고도리 와인’ 이름을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 의미를 곱씹는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화투. 어째서 이렇게 특이한 이름을 와이너리에 붙였을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오해하지 마시라. 그런 의미가 아니다. 고도리 와인이 있는 마을 이름이다. 최봉학 대표는 농부이며, 와인메이커이면서 고도리 이장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도 1리. 그래서 그 이름을 와이너리 이름으로 삼았다. 고도리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라는 의미로.

기억하기 좋고 의미를 곱씹게 되는 ‘고도리’를 와이너리 이름으로 한 것은 어쩌면 고도의 홍보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 들으면 절대로 잊지 못하면서 호기심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최봉학 대표는 12월이 가장 한가하단다. 농한기이기 때문이다. 1월 중순부터는 농사 준비를 해야 한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빠진다. 그렇다면 12월에는 한가롭게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여유를 즐겨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다. 와이너리를 운영하면서 그런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12월 역시 바쁘기는 마찬가지지만, 다른 때와 비교해서 덜 바쁘다는 의미란다.

그와 마주앉아 다섯 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가 받은 전화는 30통을 훌쩍 넘겼다. 와인 주문, 와이너리 견학 요청, 마을 일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문의하는 전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저러다가 전화기가 터지는 거나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최 대표는 농사를 시작하는 봄부터 포도 수확을 마무리해서 와인 양조를 하는 10월까지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단다. 농사를 짓고, 농산물을 판매하고, 와인을 만들다보면, 하루가 스물네 시간밖에 되지 않는 게 원망스러울 정도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지금은 농사보다는 와인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지만, 와이너리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는 농부였다. 그렇다고 줄곧 영천에서 농사만 지은 것은 아니다. 농사는 아버지 몫이었고,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아버지를 도우러 이따금 고향 집으로 오곤 했다. 그런 그의 생활에 변화가 온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였다. 그 때 그의 나이는 서른넷이었다. 비교적 이른 귀촌이자 귀향이었던 셈이다.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고작 예순두 살밖에 안 됐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마다 농사를 지으러 왔는데, 너무 힘이 드는 거라.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어요. 직장에 다니니 주말에는 쉬어야하는데 쉬지 못하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구요. 2년 정도 대구와 영천을 오가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 때만 해도 여기가 사과밭이었어요.”

고도리 와이너리 앞에는 너른 포도밭이 있다. 최 대표는 이곳을 가리켰다. 이곳에서는 외국 양조용 포도를 재배한다. 카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시라, 샤르도네, 쇼비뇽 블랑, 리슬링 등과 같은. 시험 재배용이지만 고도리 와인을 방문하는 고객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20여 년 전에는 이곳이 사과밭이었다는 것이다. 최 대표가 와인 양조를 시작하기 전이다.

“사과나무가 고목이었어요. 옛날에는 국광, 홍옥이 많았고 나중에 후지로 불리는 부사로 품목이 바뀌었죠. 그 때 막 포도 붐이 일기 시작할 무렵이라 포도밭으로 바꿨어요.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 작정으로 집도 무리를 해서 새로 지었어요. 백 년 앞을 내다본다면서. 논도 포도밭으로 단계적으로 바꿨죠.”

그 때만 해도 포도는 캠벨 얼리를 많이 재배했는데, 최 대표는 거봉으로 눈을 돌렸다. 좀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첫 해에 800평에 거봉을 심어서 500상자를 수확했다. 그 때만 해도 포도 값을 지금보다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아무리 좋은 품질의 포도라 해도 그 때의 절반 가격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최 대표의 설명이다.

거봉 재배로 높은 수익을 올리게 되자 최 대표는 포도 농사를 2~3블록 정도만 지으면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꾸준히 포도밭을 넓혔다. 지금은 포도밭이 6블록으로 4천 평 정도 된단다. 사과밭은 2500평 규모이며, 이밖에도 논농사도 짓는다. 청수 포도밭은 400평정도 있다.

생산된 과일 일부는 생과로 팔고, 일부는 와인을 빚는다. 고도리 와인의 와인 생산규모는 2만 병 내외. 와인은 레드와인, 로제와인, 스위트와인, 아이스와인, 스파클링 와인, 브랜디까지 전 품종을 다 만든다. 최정욱 소믈리에는 우리나라 와이너리 가운데 와인 전 품목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는 안산의 그랑꼬도 와이너리와 고도리 와인 정도밖에 없다고 귀띔한다. 와인 전 품목 생산은 기술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이란다.

농사 지으랴, 와인 만들랴, 이장 일까지 보랴, 최 대표가 정신없이 바쁜 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최정욱 소믈리에는 최 대표가 농번기에는 전화조차 받을 시간이 없어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농사를 짓는 것만도 엄청나게 바쁜데 와인 양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

최봉학 대표가 와인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8년이다. 영천농업기술센터에서 와인양조를 취미로 가르치는 강좌를 열었는데, 그 때 강좌를 들은 것이 시작이었다.

최 대표는 “와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집에 포도가 많으니까 남는 포도로 포도주나 담아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가 포도를 가장 많이 수확했을 때 생산량이 30톤 가까이 되었던 것이다. 5kg 박스 6천 상자를 생산했다고 설명하는데, 그 양이 금방 가늠이 되지 않아서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다.

포도를 그렇게 많이 생산하면 포도 박스를 접는 일도 만만치 않다나. 아, 그렇구나. 일이 많을 수밖에 없구나. 그렇게 바쁜데, 최봉학 대표는 와인 제조라는 일을 또 벌인 것이다. 워커홀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영천시는 2008년에 와인강좌를 개설하고 이듬해인 2009년에 예산을 확보해 와인특성화 사업을 시작한다. 와이너리 육성사업이기도 했다. 영천시는 포도 농사의 활로를 와인생산에서 찾아야한다고 확신한 것이 분명하다. 지금 보면 그 방향은 맞아 떨어진 것 같다.

영천시는 포도생산 농가에 와인사업을 권유했다. 그 가운데 최봉학 대표도 있었다.

“처음에 와이너리 제안을 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어요. 주변에서 정부에서 지원해준 사업치고 성공한 사례가 없다면서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정부지원 사업은 다 문을 닫았다면서 차라리 거기에 쏟아 부을 돈으로 와인을 사다 먹으라고까지 했어요.”

당시 시 지원금은 9800만 원이었는데 자부담 30%가 있었다. 최 대표는 실제 자부담액보다 많은 5천만 원 정도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단다. 오랜 고민 끝에 최 대표는 도전을 결심한다.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포도 값이 계속 내려가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포도 값이 불투명해지면 내 포도를 팔 데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두 번째는 나도 멋있게 한 세상을 살다 가고 싶었어요. 시골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처럼 허리가 구부러질 때까지 농사일 하고 저녁에 막걸리를 한 잔 하면서 무의미하게 세월을 보내고 싶지 않았던 거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을 하다가 가고 싶었던 거죠.”

그렇게 해서 와인사업에 발을 담그게 된 최 대표. 그런데 처음에 계산을 잘못했단다. 무슨 계산?

“시에서 공무원들이 와인을 1년에 2천 병 정도 생산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그걸로 안 되죠. 한 병에 2만 원만 잡아도 일 년에 4천만 원 수입밖에 안 되잖아요. 병이나 부자재 비용을 빼면 그 정도 생산해서는 답이 안 나와요. 결국 시설을 늘릴 수밖에 없죠.”

1년에 2천 병 생산해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다는 얘기다. 그 때까지만 해도 성공한 농가형 와이너리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당연했다. 처음부터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사업은 없지 않을까? 성공할 수 있다고 큰소리는 칠 수 있어도.

유혜준  olives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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