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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게스트하우스 그리고 마츠자키[여행기] 돗토리에서 한 달 살기 <3>
타미게스트하우스

타미 게스트하우스는 밖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내부가 넓었다. 숙박을 할 수 있는 방은 6인실 도미토리 2개밖에 없지만, 카페와 넓은 부엌, 거실 그리고 화장실과 욕실이 있다. 화장실은 3개였는데 전부 다 비데가 설치되어 있다. 하얗고 깔끔하면서 커다란 도기 욕조가 있는 욕실은 탈의실을 갖추고 있었다.

유명한 온천지역이라 그런지 욕실 수도꼭지에서는 여름인데도 뜨거운 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그 물은 온천수였던 것 같다. 샤워를 하면서 수질이 좋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오사카와 교토에 갔을 때, 수질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샤워 뒤의 느낌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여자 도미토리에 짐을 내려놓고 집안 구경을 나섰다가 거실에서 환호성을 지르면서 노는 아이들 한 무리와 만났다. 전부 여섯 명이었는데 남자 아이가 딱 한 명 끼어 있었다. 아이들은 이 동네에 사는 중학생들로 이따금 이곳에 들러서 논다고 했다. 거실 한쪽에는 작은 탁구대가 놓여 있었고, 아이들은 거기서 탁구를 치거나 책꽂이 꽂혀 있는 만화책을 보면서 놀았다.

아, 여기가 동네 아이들의 아지트구나.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가 한국에서 온 손님이라고 우리를 소개하자 아이들이 탄성을 질렀다. 한국의 트와이스를 좋아한다면서.

"트와이스가 누구야?"

나는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한국의 아이돌 걸그룹이라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동생은 투와이스를 알고 있다나. 동생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트와이스 멤버 가운데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지효, 정연, 모모.... 아이들의 입에서 이런 이름들이 튀어나온다.

트와이스의 멤버에 일본인이 섞여 있고, 앨범이 일본에서 발매 나흘 만에 10만 장이 넘겨 팔렸다는 것은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트와이스의 인기를 톳토리현 마츠자키의 타미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중학생 아이들을 통해 확인하게 되다니.

타미 게스트하우스

화장실과 욕실, 부엌까지 다 기웃거린 뒤에, 여섯 시가 훌쩍 넘어서 저녁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이 때까지만 해도 마츠자키가 한적한 시골동네라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했다. 돗토리현에서 유명한 도고온천이 있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 밖으로 나가니,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주변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없었다. 후텁지근한 기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왈칵 달려든다.

식사를 하러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마츠자키 역으로 갔다. 역 근처에 식당이 있는 것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식당이 있긴 있었는데 문을 닫았다. 영업시간이 오후 5시까지였다. 역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인역사는 여름의 후텁지근한 열기가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어디로 가야하나. 이왕에 나온 것, 동네 구경이나 하면서 식당을 찾으려고 중국식 정원 엔초엔을 향해 걸었다. 엔초엔은 돗토리현에서 유명한 관광지니 근처에 식당이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일요일 저녁 7시가 다 된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은 없었다. 엔초엔 부근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았다.

하늘은 잿빛으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흐린 구름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보니 비가 쏟아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막막해졌다. 어디로 가야 문을 연 식당을 찾을 수 있을까? 보이는 것은 어둠이 조금씩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도로 뿐이었다.

이러다가 저녁을 굶는 거 아닌가 하면서 주변을 이리저리 30여 분 이상 돌아다니다가 허름한 식당 하나를 발견했다. 탄포포(たんぽぽ). 탄포포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 자리에 손님 4명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자 하나, 남자 셋. 전부 예순은 훌쩍 넘긴 것처럼 보이는 노인들이었다. 카운터 안에서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는 주인도 할머니였다. 초고령사회 일본의 흔적이 그 식당에 어른거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과장이 심한가?

바깥은 엄청나게 후텁지근한데 실내는 시원했다. 에어컨이 켜져 있었던 것이다. 한쪽의 4인용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인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면서 물수건과 메뉴판을 들고 왔다. 메뉴판을 내주면서 무슨 얘기인가를 하는데 못 알아들었다. 서툰 일본어로 몇 번인가 되묻고 나서야 할머니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야키소바와 야키우동과 볶음밥만 된단다. 메뉴에는 생선구이 정식이나 돈까스 정식 등도 있지만, 재료가 없다나.

야키소바와 볶음밥을 주문했다. 할머니는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시원한 오차를 가져다준다. 한 모금 들이키자 시원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카운터에 앉은 손님들은 여전히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맥주를 마신다.

탄포포가 아니었으면 저녁을 굶었을까? 그건 아니다, 타미 게스트하우스 카페에서도 간단한 식사를 판다. 카레라이스와 샌드위치 같은. 거기서 먹으면 된다. 그곳에 가지 않은 건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지독한 담배냄새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지간한 식당은 금연이지만, 타미 카페는 흡연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담배를 피려고 모이는 것처럼 손님들이 담배를 열심히 피워댄다.

마츠자키에서 처음 먹는 야키소바와 볶음밥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간이 좀 세서 그렇지. 상냥한 미소를 잃지 않는 주인 할머니는 야채가 들어간 뜨거운 미소시루를 곁들여 내주었다. 식사를 하고 타미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타미 카페 앞을 지나가니 카페 안에 있던 스태프가 얼굴을 내밀어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면서 손을 흔든다.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첫날부터 우리는 유명인사(?)가 됐지만, 그것 역시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처럼 오래 묵는 장기투숙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볼거리가 별로 없는 한적한 시골 동네인 마츠자키의 유일한 게스트하우스에 한 달이나 묵는 한국인 손님은 지금까지 없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타미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들은 새 손님이 올 때마다 우리를 소개하면서 장기투숙자라는 사실을 빼놓지 않고 알려주었다. 그러면 새 손님들은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빛으로 우리를 보곤 했다.

침구를 정리했다. 매트리스, 이불, 베개 커버를 씌우는 일이다. 깨끗하게 빨아서 잘 다린 하얀 면 커버들은 손이라도 베일 것처럼 날이 서 있었다. 원하면 언제든지 커버는 교환이 가능하단다. 대신 커버를 씌우고 벗기는 일은 직접 해야 한다.

침구정리는 만만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트리스와 이불을 들썩이려니 먼지가 조도가 낮은 조명 아래 풀풀거리면서 날리는 게 보인다. 여름인데도 이불은 두꺼웠다. 동생과 이 이불 덮고 자다가 쪄죽겠다는 농담을 주고받았는데, 그날 밤에 그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다. 에어컨 때문이다. 끄면 덥고, 켜놓은 서늘한 한기가 감도니 그럴 수밖에. 아, 이불에 그런 심오한 뜻이?

도미토리는 2층 침대 3개가 놓여 있지만 결코 좁지 않았다. 다다미가 깔린 방인데, 일본에서는 다다미 장 수로 방의 크기를 가늠하던데, 그러고 보니 다다미가 몇 장이나 되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무척이나 방이 넓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2층 침대 3개가 들어갔는데도 비좁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방이었다.

한쪽에는 4쪽으로 된 유리 미닫이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자 방충문이 드러났다. 방충문 사이로 바깥 풍경이 보인다. 문 바로 아래에 돌과 잡풀로 채워진 작은 공간이 있었다. 주변이 돌로 만들어진 것을 보니, 예전에 연못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료칸을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했다더니, 연못은 그 흔적인가 싶었다. 게스트하우스 침대의 2배 크기 정도나 되려나. 그 너머로 어둠이 깔린 거리가 내다보인다. 여름의 더운 기운이 열린 문을 통해서 방안으로 안개처럼 흘러들어온다. 문을 닫았다.

여자 도미토리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어서 덥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해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이면 방을 떠나기 아쉬울 정도였다. 하지만 남자 도미토리에는 에어컨이 없다. 그 사실을 며칠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남자 도미토리는 늘 방문이 열려 있고,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내부를 들여다봤더니, 에어컨이 없었다. 그 방은 카페와 마주보는 위치에 있어 욕실, 부엌, 화장실을 갈 때마다 그 앞을 지나가기 때문에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타미 게스트하우스 여자 도미토리에는 홀로 여행하는 여자들이 배턴 터치를 하는 것처럼 꾸준히 찾아왔다. 가방이나 배낭을 메고 훌쩍 찾아왔다가 하루나 이틀쯤 묵고 바람처럼 떠나는 여자들이. 그들이 머물렀던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그런 여행자들이 떠나도 우리는 타미 게스트하우스의 붙박이 가구처럼 남아 마치 주인이나 된 것처럼 새로운 여행자를 맞이했고, 그들을 떠나보냈다.

유혜준  olives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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