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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네틱스의 관점에서 본 자치분권의 의미[문장수 교수 특별기고 1]

권력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권력을 추구하는가? 돈이 많을수록 좋듯이, 권력이란 클수록 좋을 것이다. 그런데 왜 분권이라는 개념이 정치계의 화두가 되었을까?

다른 한편으로 권력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인가 아니면 전체적이고 집단적인 것인가? 좀 더 심층적으로 말하면, 권력이란 생물학적인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혹은 이데올로기적인 이념인가?

이러한 질문은 우문일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은 인간의 권력이라고 한다면, 인간이란 생물학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권력의 획득을 추구하는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개인적 영달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구호를 강조한다.

그러나 사이버네틱스를 전공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종교가 신의 이름으로 개인의 생존의 한 방식이듯이, 정치가들이 주장하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레토릭은 개인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한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렇다고 ‘신이 존재 한다’라는 주장이 거짓이라고 해서 종교적 활동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듯이, ‘국가와 민족’이라는 레토릭으로 삶을 유지하려는 개인의 권력의지가 정치활동의 본질이라고 해서 그러한 정치활동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을 정치가가 자신의 영달을 위한 레토릭으로 사용하더라도, 그러한 개념의 사용은 개인의 의지를 넘어서는 전체성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은 사회적 전체성이라는 집단정신의 희생자 내지는 그것을 위한 봉사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개인의 권력의지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파생된 측면이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 생물학적 본능에서 유래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가는 자신의 권력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집단, 즉 정당이나 시민 단체를 이용하는 것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생물학적 본능에 충실한 희생자일 뿐이다.

이미 원자 단계에서부터 핵과 전자 사이에 끊임없이 역학적 방정식이 작용하듯이, 천체들 사이에서도 중심과 주변 사이에 끊임없는 역학적 관계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원자 단계에서 핵이 당기는 힘이 중앙 집권적 권력이라면, 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전자들의 부단한 운동은 바로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분권 운동에 상응할 것이다.

중앙과 주변의 이러한 밀당은 천체의 세계에서도 너무나 자명하게 관찰된다. 바로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은 중심이 되는 천체와 주변의 작은 천체들 사이의 구심력과 원심력의 역학관계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원자에서 핵과 전자 사이의 인력관계는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기술되고, 천문학에서 중심 천체와 주변 천체 사이의 인력 관계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으로 기술되고 있지만, 정치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2500년의 정치학적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치적 권력의 방정식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정치적 권력 방정식의 부재는 정치학자들의 무지에 기인하는가? 아니면 정치적 권력의 본성 자체가 그러한 일의적인 방정식을 불허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접근하기 위한 시도에서 우선 다른 체계에서 작동되는 역학적 방정식들을 분석하면서, 정치적 권력의 방정식을 구성할 수 있는 조건들을 탐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필자가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 사이버네틱스의 인식론이다.

이러한 목적에서 본 글은 크게 세 마당으로 진행될 것이다. 우선 첫 번째 마당에서는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정의와 역사적 과정 및 본 글의 지향 방향에 대해서 소개하며, 두 번째 마당에서는 프랑스의 자치분권의 역사를 사이버네틱스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며, 세 번째 마당에서는 필자가 생각하는 자치 분권의 방정식을 국내 사정에 연관하여 구성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첫 번째 마당과 두 번째 마당은 궁극적 목표인 세 번째 마당의 내용, 즉 한국 정치권력의 바람직한 구조를 구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당연하지만 현재의 글은 필자가 구상하는 세 마당 중 첫 번째 마당이다. 따라서 현재의 글은 자치분권의 문제를 분석하기 위한 개념적 장치들을 제안하고 그 의미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에 한정될 것이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 문장수 경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문장수  jsmoun@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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